신명기 9:22~29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불신과 반역의 역사”
-말씀 묵상-
하나님이 약속의 땅을 주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내로써 약속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몇번이나 하나님을 거역하며 분노하게 했는지, 또 모세가 몇번이나 중재했는지를 되돌아보는 본문 내용입니다.
22~24절
다베라, 맛사,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백성들이 주를 격노케 했던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써있듯 먹을 것과 마실 것 때문에 주님께 불평하며 거역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불만을 잘 생각해보면, 특별히 어떤 사치를 바라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바라는 것이므로 정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당시 백성들은 출애굽 때 생각지도 못할 많은 기적들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런 주님께서 자기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광야로 인도하셨다며 거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모세의 기도도 있고 해서 모든 필요는 채워지게 됩니다.
또한 가데스 바네아에서는 마침내 유랑 생활에서 정착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하나님이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민족이 강할 것 같다며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광야 생활은 죽을만큼 괴로웠습니다. 그 가운데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함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괴로울 때 주께 겸손히 구하지 않고, 오히려 거역했습니다. 현실은 냉엄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주께 의지했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반대로 거역하고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어떻습니까? 상황이 좋지 않기에 더욱 주님을 믿고, 필요한 것을 주께 구하며 나아가면 될텐데 오히려 주께 대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갖거나 주님을 부정하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됩니다.
25~29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하나님이 특별한 기적을 몇번이나 보여주어도 백성들은 거역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분노가 백성들에게 임하려고 할 때, 모세가 필사적으로 백성들을 위해 중보합니다. 이러한 중보자가 없다면 백성들은 진작 멸망당하고 말았겠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멸망시키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후에 오실 예수님은 그것을 실제로 행하셨습니다. 모세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주님 앞에서 백성들을 위해 필사적으로 중보함으로 주님의 깊은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주님은 모세조차도 중보하도록 훈련하셨습니다.
-말씀 적용-
고난의 때 불필요한 것을 갈망하며 주님을 거스르지 않고, 정말로 필요한 것을 구하며 기도하겠습니다. 모세가 중보한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깊은 생각 없이 헛된 것만을 간구하고 있는 저를 용서해주세요. 오늘,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과 정말로 필요한 것을 하나님에게 구하면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허락해주세요. 또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주님을 알게 되도록 기도하는 자로 삼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