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1~14
“자발적으로 기꺼이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
-말씀 묵상-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의 기도 후, 예루살렘 성전을 끼고 있는 골짜기 건너편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감람산이나 겟세마네 동산이라고도 기록되어 있고, 제자들이 지쳐 잠든 중에 예수님이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신 모습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그 장면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은 복음서 중에서도 꽤 나중에 쓰여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으므로 일부러 중복된 내용을 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 최후의 만찬에서의 기도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1~11절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을 없애고자 하는 자들이 그분을 잡으려고 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도망하지도, 숨지도 않으시고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이전에, 어떤 자들에게 둘러싸였어도 간단히 빠져나오셨던 예수님의 능력을 떠올려 보면 이번에도 간단히 그러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말씀만으로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하는 영적인 “때”를 알고 계시는 예수님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십니다.
한편, 베드로는 그 상황에 저항하며 ‘말고’라는 사람의 귀를 베었습니다. 베드로는 손에 칼을 가지고 있고 모든 제자가 배신하여도 자기만큼은 배신하지 않겠다고 선포하였습니다. 베드로의 결의는 거짓이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칼을 집어 넣으라고 하십니다. 덧붙여 말고의 귀도 예수님께서 치유해주셨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십자가를 부정한다면 우리의 구원도 있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냉엄한 현실입니다.
12~14절
예수님은 당시의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에게로 끌려 가셨습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고, 죄의 희생을 치른 후 하나님에게 백성의 구원을 구하는 역할을 가진 사람입니다. 영적으로는 예수님이시지만 형식상 당시에는 가야바였습니다. 이전에 가야바는 그 의미까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사람이 희생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옳지 못했지만 영적인 현실을 바르게 표현했습니다.
아무리 우수한 사람일지라도 영적인 현실은 성령에 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도 그 방향성은 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 적용-
사람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써 주신다. 그러므로 주께서 가르쳐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며, 주께서 원하시는 것에 순종해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기도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에 순종할 수 있기를 원하오니 힘과 지혜를 허락해 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