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0:10~20
“평화를 제안할 때와 죄악을 진멸할 때”
-말씀 묵상-
한 성을 공격할 때의 수칙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경 전체를 통해 전쟁을 권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툼 그 자체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죄 많은 세상에서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철저히 심판하시는 한편 평화의 왕이시기도 합니다. 회개하여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한없는 긍휼이 임합니다. 현대에는 예수님의 복음으로 인해 싸움의 방법이 굉장히 영적인 것이 되었지만 구약 성경을 통해 영적인 싸움에 대해 묵상하며 배우고자 합니다.
10~15절
하나님은 영적인 거룩함을 지키며 죄 있는 세상에 소망을 나타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전쟁을 명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것은 이미 멸망이 확정된, 구원받을 수 없는 죄로 가득한 인간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전쟁을 좋아하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만약 가나안 땅의 백성들 이외(변방의 땅을)를 정복하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평화를 제의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무턱대고 호전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워야만 하는 상황이 된 시점에서,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마음에서 벗어난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멸망은 피했어도 재산과 가족을 빼앗기고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약탈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호전적으로 나아간다면,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에 걸맞는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것은 전쟁에 제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16~20절
하나님은 가나안 땅의 백성들과 전쟁을 할 때에는 철저하게 멸망시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이러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가나안 백성들은 영적으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백성들과의 싸움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라는 인상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쭉 인내하신 역사가 있습니다. 또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하심 없이는 어쨌든 죄로 인한 죽음 즉 멸망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하나님이 엄하게 심판하셨다기보다는 이미 내려진 심판에서 구할 것을 포기하셨다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가나안 백성들의 죄는 정도가 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구별될 것을 명령하시고 철저히 죄의 근절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한편, 그것과 상관없는 것은 금지됩니다. 왜 이렇게까지 힘든 전쟁을 강요하시냐면 인류 유일의, 죄로부터 구원의 소망을 나타내고 하나님 나라의 모델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가 있어서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인 존재로서 우리도 매일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말씀 적용-
주님은 악을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를 두려워하고 죄와 철저히 마주하며 거룩함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고 하나님의 마음대로 주님 앞에 회개하며 예수님을 믿고 전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선한 데는 지혜롭고 악한 데는 미련하게 해주세요. 또한 주님의 소망을 알리는 데에 저를 사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