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1~16
“조롱속에 역설적으로 드러난 메시아 왕의 전체성”
-말씀 묵상-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받으실 때, 사람들이 영적 진실을 깨닫지 못하는 비극적이기까지 한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얄궂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1~5절
빌라도는 예수님을 처벌하는 것을 허락하고, 금이 아닌 가시면류관과 왕이 입는 자색 옷을 상처 가득한 몸에 입히도록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형시키려는 사람에 대한 혐의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보여주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어떤 죄도 발견하지 못했고, 사실 매질 조차도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통해 일이 마무리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요?
또한, “보시오. 이 사람이오”라며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내보입니다. 빌라도는 이 초라한 사람이 유대인의 왕일 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빌라도 자신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말입니다. 사실 영적으로 모든 사람이 이 분을 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6~16절
빌라도는 권위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인간 세상의 얄궂은 현실입니다. 빌라도는 자신을 권위자라며 예수를 심판하는 자리에 있다고 예수님께 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적인 진리를 전하시죠. 11절의 말씀은 여러 가지 깊은 뜻이 있지만 간단히 이야기하면, 예수님이야말로 권위자라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생각하면, 천지를 지으신 분에 대하여 스스로 권위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진리를 깨달은 후에는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발언이었는지 슬플 정도로 알게 될 것입니다.
또,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판하지 않으면 로마 황제를 거역하는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말에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권위자라고 하면서도, 권위를 보여주기는커녕 사람들을 두려워해 그들에게 굴복했습니다. 또한 로마에는 법이 존재했는데 권위의 문제로 예수님을 사형시키려고 했지만 법적으로는 아무 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죄가 없는데 사형을 시키면, 그것이 오히려 로마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일이 됩니다.
말을 하자면 끝이 없지만, 영적인 진실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우수한 사람일지라도 영적으로는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 적용-
영적인 진실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스도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고 싶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말씀과 더불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하고 기도하며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 힘으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주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