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묵상 가이드] 2020년6월26일(금)

시편 130:1~131:3
“기도하며 기다리고 바람이 성도의 믿음입니다”

-말씀 묵상-
성전으로 향할 때의 찬양이 이어집니다. 오늘의 두 시편은 주를 기다리는 찬양입니다. 성전을 향하는 노래는 기본적으로 주님에 대한 감사와 기쁨, 기대가 넘치는 찬양입니다.

130편
시편 기자는 밑바닥의 상황에서 주님을 찾습니다. 우리는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나요?

가장 나쁜 것은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데 부르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안 좋은 것은 주께 대하여 반항적으로 부르짖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죄가 원인이지만 하나님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자신의 기분을 달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를 의식하고 있다는 관점에서는 상대적으로 낫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징적이죠. 다음으로 비교적 좋은 것은 단순히 주님을 기대하는 자세일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이 어떻게든 해주실 것이라는 소망이 있는 자세입니다. 언뜻 보기엔 좋아 보이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는 건 내 상황을 뒤로 미루고 주님만 보는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상황만 좋게 해준다면 뭐든지 좋으니 구한다는 우상숭배의 위험성을 내포한 태도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자세는, 스스로의 어리석음과 문제를 인식한 다음 회개하고 주님께 자비를 구하는 자세입니다. 언뜻 보기엔 편한 자세로 보이기도 하지만, 정말 영적인 상황을 안다면 오늘 시편의 저자처럼 자신이 밑바닥인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사람의 노력으로 포장할 단계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불의는 눈여겨보지 않으시고 심판이 아닌, 주님을 부르는 자를 용서하고자 하십니다. 용서하심의 힘으로 우리는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놀라울 정도이며 단순한 권위에 대한 두려움과도 다른 존경입니다. 아무리 어두운 가운데서도, 파수꾼이 아침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처럼,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구원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찾도록 선언하며 나아갑시다.

131편
다윗이 불렀다고고 명기되어 있는 찬송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주께 축복받은 리더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축복받고 자신이 영예를 누리는 것은, 주님이 축복해 주시기 때문인 것을 실패를 통해서조차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지도자이기도 한 다윗마저도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듯 주를 찾지 않을 수 없었을 정도로 주님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나에게는 더욱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을 백성에게 권면하는 찬양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님을 바랄 때 중요한 것은 기다림입니다.

-말씀 적용-
내 사정으로만 주님을 찾지 않고, 낮아진 회개로써 주님께만 의지하겠습니다. 고통 가운데 주님이 도와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도움을 기다리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내가 제멋대로 나아가지 않고, 주님을 바라며 기다릴 수 있길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 이웃도 주님을 바라며 기다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QT一言アドバイス] 2020年6月26日(金)

詩篇 130:1〜131:3
「祈って待ち望むのがクリスチャンの信仰です」

ーみことばの黙想ー
神殿に向かうときに賛美する都上りの歌が続きます。今日の二つの詩篇は、主を待ち望む賛美です。都上りの歌は基本的には主への感謝と喜び、期待があふれる賛美です。

130篇
歌の作者は、どん底の状況の中から主を呼び求めています。
私たちは、状況が悪いときに、どのような姿勢を神に向かって呼び求めるでしょうか?
一番悪いのは、主の助けが必要なのに呼び求めないことです。
次に良くないのは、主に対して、反抗的に呼び求めることです。多くの問題は、罪が原因であるのですが、神に責任転嫁して、自分の気を紛らわすということです。しかし、主を意識しているという観点では、比較的マシでしょう。出エジプトのイスラエルの民が象徴的です。
次に比較的良いのは、単純に主に期待する姿勢でしょうか。辛くても、主がなんとかしてくれるという希望がある姿勢です。一見、良さそうに思えますが、一つ問題があるのは、自分の状況を棚に上げて、主だけを見ている状況で、下手をすると、状況さえ良くしてくれるのであれば、なんでも良いので、求めるという偶像礼拝の危険性を含む態度です。
最も理想的な姿勢は、自らの愚かさや問題を認識した上で、悔い改め、なおかつ、主だけに哀れみを求める姿勢です。一見、都合の良い姿勢に見えなくもありませんが、本当に霊的な状況がわかっていれば、今日の詩篇の作者のように、自分がどん底である状況がわかります。すでに、人の努力で取り繕う段階ではないのです。
しかし、主は、私たちの不義には目を止めず、さばきではなく、主を呼び求めるものをゆるそうとされます。赦しの力で私たちは主を恐れずにはいられません。それは驚くほどのことで、単純な権威に対する恐怖とも異なる尊敬です。どんなに暗い中でも、夜回りが夜明けを心待ちにするように、求めずにはいられない救いです。
従って、主を求めるように宣言していきます。

131篇
ダビデによって、歌われたと明記されている賛美です。ダビデはイスラエル史上最も主に祝福されたリーダーでした。しかし、彼がそのように祝福されたのは、自分が栄誉を受けているのは、主が祝福してくださるということを、時には失敗を通してでさえ、よく知っていたからです。
最高のリーダーでもあったダビデでさえ、幼子が母親を求めるように主を求めずにいられないほどに、主が必要不可欠であることを賛美しています。
今日の私にとっては尚更、主が必要です。主を待ち望むことを民に呼びかけている賛美です。
ここで、もう一つ、主を待ち望むときに重要なのは、“待つ”ことです。

ーみことばの適用ー
自分の都合ばかりで、主を求めるのでなく、砕かれた悔い改めを持って、主にだけ頼ります。苦しい時も、主が助けてくださる希望をもって歩みます。ただし、主の助けを待ちます。

ー今日の祈りー
私が自分勝手にあゆまず、主を待ち望むことができるように、また、隣人も主を待ち望むことができるように助けてください。

[QT묵상 가이드] 2020년6월25일(목)

시편 129:1~8
“악인은 하나님 백성을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말씀 묵상-
성전을 향해 가며 찬양하는 노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편은 고통 가운데 구원해주실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1~4절
중학생 때 집에서 떨어진 중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그리스도인의 행동 패턴이 세상 속 동세대와 달랐기 때문인지, 따돌림의 대상이 됐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심한 따돌림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항상 바른 일을 하려는 자세가 주위에서 보기에 별로였는지 이상한 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서 상대해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저는 붙임성이 없기도 했던 것 같구요.

그때 많은 믿는 분들의 중보가 있어서 이겨낼 수 있었지만, 그것은 상대방과 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따돌림 당한 원인이기도 한,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철저히 행했습니다. 성적과 스포츠 등 경주에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옳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은 한편, 스스로 잘못했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사과했습니다. 스스로 잘못된 것은 솔직하게 사과하는 모습이 좋았던 건지 관계는 개선되어 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바르게 나아가려 해도 그것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의로운 분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계시하시는 것도 옳습니다. 악인의 길은 아무리 편하고 손쉬워 보여도 역시 계속되지 못합니다. 주님은 보호하시며, 옳은 일을 행하십니다. 주님을 신뢰하며 나아갑시다.

5~8절
129편은 하나님을 거스르고 사는 자의 말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백성 또 그분의 방법을 미워하는 자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확실히 처음에는 무성하게 자라도, 자라기 전에 말라 버리는 풀과 같습니다. 열매를 맺지도 않고 열매를 거두려고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려는 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주님을 거역한다기보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언뜻 즐겁고 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분명히 그런 백성을 멀리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주님의 백성을 지키시고 인도하심을 찬양합시다.

-말씀 적용-
주님을 따르지 않는 것은, 그냥 좀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실패 그 자체임을 알고 오늘도 주님이 지켜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오늘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제 마음을 주님으로 채워주세요. 주위가 아무리 메말라 있어도, 저는 주님의 은혜로 윤택하여 주위를 윤택하게 하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오직 주님께만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