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묵상 가이드] 2020년5월16일(토)

신명기 19:1~14
“자비와 긍휼의 피난처, 도피성”

-말씀 묵상-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부터, 사람의 연약함 때문에 사고나 다툼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들을 통해 불필요한 피를 흘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를 입지 않도록 배려하십니다.

1~6절
하나님은 의도적이 아닌 과실(사고)로 사람이 죽었을 경우, 복수로 더 많은 살인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피성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연약함을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할 수 없는 것을 명령하시지 않고, 연약하여도 할 수 있을만한 것을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 그 끝에는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나타납니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 예수님의 재림으로 성취되어갈 것을 생각하면 현재진행형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미움과 슬픔이 아닌 은혜와 긍휼, 용서와 은혜가 넘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용서의 실천의 형태로써 도피성을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 하나님의 보배인 백성이 함부로 해를 입어서는 안됩니다.

7~14절
한편, 살인이 죄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특히 고의로 일어난 것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하게 됩니다. 하나님 백성 가운데에서 죄를 제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주께서 회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나라에는 죄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죽음이라는 무거운 결과가 따릅니다. 그러나 이를 율법적으로 행한다 해도 복수는 연이어질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고 심지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의 희생으로 제거되었고, 또 부활하심으로 죄 사함 받은 새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복음5:39)” 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읽고 있는 신명기에도 “복수하는 것은 내 일이다(신명기32:35)”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심판은 주께 맡기고, 용서받은 자로서 나 또한 용서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악을 방치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악을 방치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은 사람을 심판하지 말고 그 사람이 죄를 자각하고 회개할 수 있도록 예수님 곁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악과의 싸움에 대해, 나중에 바울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악에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로마서12:21)”

자기 멋대로의 정의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말씀 적용-
오늘, 내 정의감으로 일을 바로잡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회개하고 용서하며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겠습니다. 내 행동의 동기가 하나님 나라의 자비와 긍휼을 나타내는 것인지, 내 멋대로의 정의감인지 돌이켜보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나 또한 구원받은 자입니다. 죄 있는 자를 몰아세우지 말고 회개와 용서라는 탈출의 길로 인도하는 돕는 자로 사용해주세요.

[QT一言アドバイス] 2020年5月16日(土)

申命記 19:1〜14
「恵みとあわれみの避け所、逃れの町」

ーみことばの黙想ー
神様は、イスラエルの民が約束の地に入る以前から、人の弱さのために、人々が事故や争い事が起こることが避けられないことをご存知でした。それらを通して、不必要な血が流れて、神様の民が損なわれることのないように配慮されました。

1〜6節
神様は、意図的ではなく、過失(事故)で人が死んでしまった場合に、復讐でさらなる殺人が起こらないように、逃れの町を予め用意されました。
神様は人の弱さをよくご存知です。ですから、できないことを命令されるのではなく、弱さがあっても、できるはずのことを命令されました。神様の御心の先には、神の国が完全に現れることがあります。これは、終末の時代、イエス様の再臨によって成就していくことを考えれば、現在進行形です。さて、その神の国は、憎しみや悲しみではなく、恵みとあわれみ、赦しと愛が溢れるところです。ですから、赦すことの実践をその形として、逃れの町というものを置かれました。
むやみに神様の選ばれた民、神の宝の民が損なわれていけません。

7〜14節
一方で、殺人が罪であることは言うまでもないことです。特に故意に行われたのであれば、尚更です。その罪に対して相応の責任を果たすことになります。神の民の中から罪を取り除く必要があります。なぜなら、後に主が回復しようとしておられる神の国には、罪があるはずがないからです。これには罪を取り除くには基本的には、死という重い結果が伴います。
けれども、これを律法的に行っても、復讐の連鎖が続きそうです。人のできることには限りがあり、しかも不完全です。
ですから、人の罪を贖うために、イエスの十字架による死と復活がありました。私たちの罪はイエス様の犠牲によって取り除かれ、復活によって新しい永遠の罪赦された(取り除かれた)いのちを得たのです。このイエスは、「あなたの右の頬を打つ者には左の頬も向けなさい」(マタイ5:39)
と語られます。今読んでいる申命記自体にも、「復讐と報復はわたしのもの」(申命記32:35)と記されています。ですから、正しい裁きは主に委ね、自分自身は赦されたものとして赦していくことが必要でしょう。
では、ここで疑問が残ります。悪を野放しにして良いのか? まず、神様は悪を野放しにはされないことを信じましょう。次に、私たちは罪を犯した人をさばくのではなく、その人が罪を自覚し、悔い改めるように、イエスの元に導くべきです。クリスチャンの悪との戦いは後にパウロが次のように語っています。「悪に負けてはいけません。むしろ、善をもって悪に打ち勝ちなさい。」(ローマ12:21)
自分勝手な正義でなく、神のみこころがはたされていく世になるように努めていきましょう。

ーみことばの適用ー
今日、自分の正義感で物事を正すのではなく、神の御心を求め、悔い改めと赦し、愛をもって世に仕えます。自分の行動の動機が神の国を恵みとあわれみを表すことか、自分勝手な正義感かを吟味します。

ー今日の祈りー
私も救われたものです。どうか、罪あるものを追い詰めるのではなく、悔い改めと赦しという脱出の道に導ける助け手として、用いてください。

[QT묵상 가이드] 2020년5월15일(금)

신명기 18:15~22
“참예언자의 분별 기준, 말씀의 성취”

-말씀 묵상-
왕, 제사장에 이어 예언자에 대한 가르침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것의 필요성을 묵상하고 은혜를 나눠봅시다.

15~18절
먼저 기억해둬야 하는 것은, 참예언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15절에서 말하는 예언자는 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아직 감추어져 있지만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거룩한 것이었으므로 그 거룩함에 닿으면 자신의 죄도 함께 사라질 것만 같은 현실에 대해, 하나님은 그 말이 맞다고 하시며 사람으로서의 예언자를 보내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시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너(모세) 같은 예언자”라고 표현하고 계시지만 사실 모세보다 훨씬 뛰어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모든 것은 이 예언자(예수님)로부터 전해집니다. 그렇기에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확실히 전하고 있는 것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받아들이는 것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확실하게 주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말씀이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

19~22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듣고 받아들이는지의 여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그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무심코 듣고 흘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책임은 반드시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벌을 받는다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축복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죄에서 구원받는 일은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참예언자는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예언자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해서 많은 예언자가 쓰임받은 것도 성경적인 사실입니다. 예언자는 주께서 전하라고 한 것 이외의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해서는 안됩니다. 거짓 예언자들이 전한 것은 본질적으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틀릴 수도 있지만 예수님은 틀리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사람을 구원하시며 언젠가 다시 오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가지 말을 하나 적어도 주님 안에 있는 예언자는 예수님과 성경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부정하는 자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습니다. 분별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말씀을 가까이할 필요가 있겠죠.

-말씀 적용-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이용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가까이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하는 거짓된 말들이 있더라도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근거로 분별하여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더욱 많은 자들이 말씀을 가까이 하며 받아들일 수 있기를.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축복해주세요. 나 또한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